특정 클래스를 너프하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피곤하고 고된 일입니다. 원성과 욕을 받기 딱 좋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동안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고 이번에 무적->피해 감소 전환 패치를 계기로 획기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에 더는 잠자코 있기 어렵다는 판단에 몇 글자 적어봅니다. 투기장에서 나홀로 무한 무적(이제는 무한 피해 감소)을 달고 있는 화령에 대한 주제입니다.
2023년 10월 처음 나올 때만해도 화령의 성능 평가는 앞서 나온 초령보다는 얌전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핵심 패시브인 '등선(1.5초간 무적, 현재는 슈아+피해감소)'이 투기장에서 적용되지 않는 버그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후 버그가 고쳐지고 연구가 거듭되면서 화령의 평가는 달라졌습니다. 당시 초령과 더불어 투기장에서도 무한 무적+슈아가 유지되기 때문이었죠.
거듭된 너프 패치로 초령 유지력이 정상화(?)된 것과 달리 화령의 메커니즘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출시 직후나, 5개월이 지난 지금이나 무한 유지력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화령은 일부 기술들을 사용할 때마다 '신령의 기운'을 2개씩 획득하고 5개가 모두 채워졌을때 이를 터뜨리면 1.5초간 피해감소+슈아(전에는 무적) 효과를 누리는 등선을 얻습니다. 원래 화령이 패시브로 모피감 15%이 있어 단단한데 여기에 추가로 유지력까지 얻는 셈이죠.
만약 등선이 발동하기 꽤 어려운 패시브였다면 화령의 사기성은 부각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신령의 기운 5스택을 채우기 매우 쉽다는 게 문제입니다. 화령은 스킬을 쓸 때마다 신령의 기운을 2개씩 얻는데요. 초령이나 다른 스택성 패시브를 가진 클래스들이 스킬 사용시 1회만 쌓는 걸 감안하면 화령은 2배나 고효율을 내는 셈입니다.
여기에 쿨 11초에 4회 이동 가능(추가 이동시 정신력 소모)한 여우달음을 활용해 투기장 맵 한 바퀴 마실을 나가주면 화령은 신령의 기운을 만땅(5개) 채워 등선으로 상대를 농락할 채비를 아주 손쉽게 마칩니다. 이 사이클만 계속해서 유지하면 상대는 절대 화령을 메즈걸 수 없고 화령만 일방적으로 상대를 노릴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물론 필드에서의 양상은 다릅니다. 각인을 통해 상대 화령의 자원(신령의 기운)을 일부 지울 수 있기 때문에 투기장 만큼 빠르게 등선을 연이어 활용할 수 없어서죠. 하지만 카르케야의 영웅 같은 동등 보정 대전에서는 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화령은 아무 제약도 받지 않고 무한 유지력을 펼칠 수 있습니다. 펄어비스가 투기장에서 3개 스킬만 슈아를 부여한 건 상대의 빈틈을 노리라는 취지일 텐데요. 화령만 이 룰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무적->피해 감소 전환으로 나름 의미 있는 성능 너프가 있길 기대했으나 피해 감소 옵션이 75%에서 90%로 상향되면서 사실상 전과 다를 바가 없다는 판단입니다. 물론 잡불이 빠지면서 잡기로 역습을 노릴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이마저도 화령이 잡불 옵션이 있는 '도리깨연풍'을 쓰면 해결됩니다. 맴체로 잡기 빼는 플레이도 가능하지요.
펄어비스가 필드에서 사기적인 성능을 보인 초령을 거듭된 너프로 정상화한 것처럼 화령 역시 적절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필드 성능은 손대지 않고 투기장 기준 유지력을 하락하는 패치가 절실합니다. 제 판단에 해결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등선 투기장 미적용
가장 심플한 방법입니다. 이번에 팔라딘이 신성력을 모두 모아 터뜨리면 무적 효과를 누리던 '신성 강화'가 등선처럼 1.5초 유지 버프로 바뀌었는데요. 이번에 바뀐 신성 강화 역시 투기장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걸 확인했습니다.
만약 신성 강화가 등선처럼 투기장에서도 적용된다면 팔라딘도 화령 못지 않은 사기 클래스로 거듭났을거라 봅니다. 같은 맥락에서 화령의 등선 역시 투기장 미적용으로 바꾼다면 유지력을 적절하게 낮출 수 있습니다. 설령 등선이 빠진다 하더라도 앞서 언급했듯 화령은 모피감 15%를 항시 유지하고 강신 효과를 통한 주력 딜기술의 딜량 상승 효과가 있어 체급상 밀리지 않습니다.
*여우달음 정신력 소모해 추가 이동시 투기장 슈아 미적용
만약 펄어비스가 등선을 투기장 화령의 아이덴티티로 유지하겠다면 여우달음을 손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검사모 대부분의 추가타는 투기장에서 슈아가 미적용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같은 맥락에서 정신력을 소모해 여우달음 추가타(3, 4타)를 사용하는 구간을 투기장 비슈아로 바꿔준다면 화령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의미있는 빈틈을 노릴 수 있게 됩니다.
화령 입장에서는 그동안 여우달음으로 도망가며 여유롭게 신령의 기운을 채웠다면 이제는 3, 4타 때 역습당할 경우를 대비해 긴장하게 될 겁니다. 여차하면 회피로 끊고 도망가는 옵션을 택해야겠죠.
두 가지 모두 화령의 필드 성능은 전혀 제약하지 않으면서 투기장 내 유지력만 의미있게 감소시키는 방안입니다. 물론 이보다 더 좋은 방안도 있을 겁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초령을 의미있게 너프해 밸런스를 잡았듯 화령을 적절히 조절해 투기장 생태계를 개선해야 할 때가 이제는 되었습니다. 물론 펄어비스가 투기장을 완전 손을 놨다는 건 잘 압니다만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정말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