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의 만찬]
해달족 천재 화가 '카쿠오' 화백의 작품이다.
13월의 만찬은 보름달이 뜬 어느 밤 오킬루아 해변에서 탄생했다.
인생의 행복은 곧 배를 채우는 것이라는 해달족의 인생관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달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물고기들을 표현함과 동시에 물고기들이 신나게 요동치는 카쿠오의 뱃속을 감각적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식욕 부진에 시달리는 해달족들의 치료에 쓰였다고 한다.
[생각하는 자화상]
해달족 천재 화가 '카쿠오' 화백의 작품이다.
생각하는 자화상은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카쿠오가 내게 아이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그린 작품이다.
그는 오색빛 산호 물감으로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들 해달과 그 어떤 파푸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눈빛의 자신에게 무지개색을 입혔다.
그는 땀과 피, 눈물과 행복, 추억과 미래 등 아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든 걸 표현했다고 발표하여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지만, 아직 그에게 고백한 여성 해달은 없다고 한다.
[뿌리요정의 손짓]
해달족 천재 화가 '카쿠오' 화백의 작품이다.
뿌리요정의 손짓은 한여름, 해달 사관 학교 사관생도들이 모두 모인 날 카쿠오가 그린 그림이다.
이날 갑자기 여우비가 내려 사관생도들이 너도나도 들고 있던 조개 방패를 우산 삼아 머리를 보호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그런데 그때 황금 빛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조개 방패들을 찬찬히 훑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건 마치 위대한 전사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뿌리요정의 손짓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연인지 몰라도 부대 간식으로 뽀글뽀글 황금 맥주가 나왔다는 말이 있다.
[파푸]
해달족 천재 화가 '카쿠오' 화백의 작품이다.
파푸는 카쿠오가 유일하게 왼손으로 그린 작품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대왕 조개로 착각해 깨물어 버렸다. 다행히 곧 낫긴 했지만, 파푸족의 암살 시도가 아니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지지자를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은 그가 복어 꼬치를 너무 먹어 일어난 환각으로 판명돼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는 치료 기간 내내 오른손을 볼 때마다 침샘이 터지고 밀려오는 배고픔에 분노조절이 힘들어 괴로웠다고 한다.
그는 그 악몽의 시간을 꼭 고약한 냄새가 나는 파푸 같았다고 발표해 많은 해달족을 열광하게 했다.
[푸른 눈의 침략자]
해달족 천재 화가 '카쿠오' 화백의 작품이다.
푸른 눈의 침략자는 플로린 마을 공방에 놀러 간 카쿠오가 로리아의 손거울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처음 거울을 본 그는 깜짝 놀라 두 번 기절했는데, 한 번은 얼굴이 다 들어가지 않아서고, 한 번은 자신의 두 눈 사이에 살고 있는 푸른 눈의 침략자와 마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그는 언제 침략자에게 정신 지배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시 작가 생활을 중단하고 종일 거울만 보았다. 하지만 돌연 어느 날 평화 협정이라도 맺었는지, 서로 영감을 주며 잘 공존하기로 의사를 발표하며 복귀했다.
[해와 달의 바다]
해달족 천재 화가 '카쿠오' 화백의 작품이다.
해와 달의 바다는 카쿠오가 어린 시절 나다 섬 할머니 집 지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그린 작품이다. 그의 상상력과 예술성이 어렸을 적부터 남달랐다는 걸 보여준다.
그는 이 세상 끝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해와 달의 바다가 존재하고, 그 사이 우리 바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달들은 그들이 정복할 수 없는 바다는 존재할 수 없다며 세상 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쿠오는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한류와 난류가 균형을 맞춰 우리 바다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거라며 해달족 절대 규칙에 예외 조항을 둔 것으로 유명해진 작품이다.
[낙원]
해달족 천재 화가 '카쿠오' 화백의 작품이다.
낙원은 카쿠오가 '연어밥상'이라는 책을 편찬하기 위해 베어강 상류에 올랐다가 그린 작품이다.
부드럽게 굽이치는 물살을 따라 헤엄치는 연어들. 그리고 빵빵해진 배를 자랑하며 낮잠을 잘 수 있는 널찍한 베개 바위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카쿠오는 낙원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며 이 작품을 발표했다. 하지만 곧 온 지역의 해달족이 모여들어 물고기의 씨가 마르자 후발주자들에게 사기꾼이라 불리며 작품과는 반대되는 암흑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