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은 짧은 이야기가 있다.
치매에 걸린 노부가 아들에게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는 이야기다.
“당신은 누구세요?”
“저 꽃 이름은 뭐니?”
“네 이름은 무엇이니?”
“언제 오니?”
처음엔 아들도 대답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이 두 번, 세 번, 열 번을 넘어가자 결국 짜증이 났다.
“아버지, 그만 좀 물어보세요. 방금도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아들은 문득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말을 막 배우던 어린 시절,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해 같은 것을 보고도 수십 번씩 묻곤 하던 때.
“아빠, 저건 뭐야?”
“아빠, 왜 그래?”
“아빠, 이건 뭐야?”
“아빠, 저건 왜 저래?”
아들은 같은 질문을 끝없이 반복했지만, 그때의 아버지는 한 번도 짜증 내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마치 처음 듣는 질문처럼, 아들이 세상을 처음 배워가는 그 순간을 귀하게 여기듯,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다정하게 답해주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아들은 울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저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라고 생각했다. 부모의 사랑을 말하는 흔한 이야기, 늙어가는 부모와 자식의 마음을 건드리는 에피소드. 그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제 그 이야기가 내 일이 되었다.
내 아버지는 지금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신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전화를 하셔서 처음 전화하신 것 처럼 같은 질문을 하신다.
“오늘은 어땠냐.”
“밥은 먹었냐.”
“어디 있냐.”
“몸은 괜찮냐.”
나는 이미 대답한 말을 또 대답한다. 아까도 했던 이야기를 다시 말한다.
방금 끊은 전화가 다시 울리면 가슴 한쪽이 무거워진다.
솔직히 말하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왜 또 전화하셨을까. 왜 또 같은 질문을 하실까. 왜 기억하지 못하실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곧바로 마음이 무너진다.
짜증 뒤에는 죄책감이 오고, 죄책감 뒤에는 슬픔이 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언제나 크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법조인으로써 누구보다도 영민하고 명석한 분이셨다.
내 앞에서 흔들리지 않던 사람, 내가 기대고 묻고 의지하던 사람, 내가 모르는 세상을 먼저 알고 있던 사람.
그런 아버지가 이제는 내게 묻는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 내가 밥은 먹었는지, 내가 잘 있는지.
어쩌면 아버지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네 아버지로 남아 있느냐.”
“나는 아직 너를 걱정해도 되는 사람이냐.”
“나는 아직 너와 연결되어 있느냐.”
치매는 아버지의 많은 기억을 가져갔다. 시간의 순서도, 방금 나눈 대화도, 익숙했던 일상의 감각도 흐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병이 끝내 가져가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아버지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묻는다. 아버지는 잊어버려도 또 전화를 건다. 아버지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내 안부를 묻는다. 그 질문은 치매의 증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사랑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50이 넘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끝없이 질문하던 아이는 이제 늙고 병든 아버지의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었던 일을 이제 내가 아버지에게 돌려드려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배울 때 기다려주셨다. 나는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잊어가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아버지는 내가 같은 질문을 해도 웃으며 대답해주셨다.
나는 이제 아버지가 같은 질문을 하실 때 조금 더 부드럽게 대답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매번 다정할 수는 없다. 마음이 지치고 목소리가 굳고, 전화를 받기 전 깊은 한숨이 나오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억하려 한다.
아버지가 나를 키울 때도 쉬운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울고 보채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귀찮아하지 않으려 애썼고, 기다렸고, 대답했고, 내가 자랄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한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아버지, 오늘도 괜찮습니다.”
“저 밥 먹었습니다.”
“저 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사실은 그 말들을 아버지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 내 곁에 계신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직 남아 있다.”
“나는 아직 아버지의 아들이다.”
치매는 많은 것을 흐리게 만들지만, 아버지와 나 사이의 시간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아버지가 나를 안아주던 시간, 내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던 시간, 내가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던 시간,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묵묵히 곁을 지키던 시간. 그 모든 시간이 지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도 전화가 오면 나는 다시 받는다.
조금 지친 목소리일 수도 있고, 조금 늦게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완벽하게 다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다시 대답하려 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수없이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이제 아버지에게 같은 사랑을 되돌려드리고 싶다.
아버지가 나를 기다려주셨던 만큼, 나도 아버지를 기다리고 싶다.
아버지가 내 어린 시절의 반복을 사랑으로 받아주셨던 것처럼, 나도 아버지의 노년의 반복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아버지. 당신은 많은 것을 잊어가고 있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이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당신이 내게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하루에 열두 번씩 같은 질문을 하면서도 끝까지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의 기억이 흐려지는 시간 속에서, 이제는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주셨던 사랑을.
그리고 제가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뭉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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