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칼페온 서남부 직할령
제6장 엘리언의 축복
이것은 언약에 대한 이야기다. 마침내 다가올 그 날, 모든 혼돈 속에서 오로지 엘리언의 자손들만이 영광의 땅을 밟을 것이다.
발키리 부대는 엘리언의 가호를 받아 창설되었다. 비록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그녀들은 그 어떤 전쟁에서도 늘 돋보이는 존재로 활약해왔다.
태초, 어둠으로부터 시작되어 모두에게 빛이 왔음이니.
최초의 발키리는 엔슬라의 전설로 시작된다. 칼페온 기사단 소속이던 엔슬라는 길고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기사였다.
적들을 무찌르는 성스러운 기사를 보며, 모두가 다시금 엘리언 님을 찬양할 때, 그녀를 보낸 엘리언 님의 뜻을 깨달았다.
그녀는 어디에 있던 돋보이는 존재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제 몸집만 한 창인 랜시아와 커다란 방패를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밝은 빛 뒤에 늘상 어둠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마침내 영광의 날이 찾아올 것이다.
-숨겨진 엘리언의 축복
제7장 최초의 발키리, 엔슬라
칼페온 신성 대학에 있는 학생들의 붉은 머리는 엘리언의 신성력을 상징한다. 정말 붉은 머리가 신성력과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엔슬라의 힘은 의심할 데 없었고 그녀가 엘리언의 이름으로 기술을 쓸 때는 붉은 머리가 신의 가호를 받은 것처럼 환하게 빛났었기에 정설로 굳어졌다.
그녀가 한 번 휘두른 랜시아의 창에 적들은 우수수 떨어졌으며 신성한 힘이 담긴 창이 내리꽂힐 때는 경이롭다는 표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엔슬라의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않던 엘리언교는 엔슬라의 예명인 발키리스를 따 발키리 교본을 편찬했으며, 발키리 양성에 집중한 신성 대학을 창립했다. 신성 대학은 엘리언교 산하의 기관으로 오직 완벽한 발키리를 양성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엔슬라는 자신의 능력으로 나라를 지키는 데에 이바지하고 이로운 영향력이 다른 이들에게도 널리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감동했다. 그랬기에 어떤 무리한 요구라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엘리언교와 칼페온을 위해 늘 앞장서서 이바지했다.
엔슬라가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은 많은 일정 끝에 드디어 대학에 처음 방문을 했을 때였다. 모두가 붉은 머리를 지닌 학생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엔슬라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대학에서 양성될 소녀들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엘리언교는 매우 까다로운 기본 소양들을 제시했고, 그 어떤 것이든 조금이나마 결여된 자들은 가차 없이 내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엔슬라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엔슬라는 배움의 기회가 적은 아이들이 대학에서 평등하게 공부할 기회를 갖고 엘리언의 이름 아래 보호받길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신성 대학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수많은 엔슬라였다. 이왕이면 어렸을 적부터 잘 교육되어 교단이 하는 말에 의심하지 않고 따라줄 신의 이름을 딴 군대들.
엔슬라는 교단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성 대학 건립 후에 받은 지휘관 직위 또한 허울 뿐이었다.
그렇게 양성된 발키리 부대에게 어느 날 칼페온 신전에 불완전하게 소환된 크자카를 봉인하라는 첫 명령이 떨어졌다.
제8장 외눈박이 거인과 크리오 마을
칼페온 서남부 우거진 숲속 어딘가 숨어있는 강가에는 해달족이 모여 사는 크리오 마을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벌써 귀여움이 가득한 이 마을은 외부인이 들어가기엔 조금 까다롭다.
먼저 해달족은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기 때문에 크리오 마을로 가는 입구를 찾기가 힘들고, 어쩌다가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앞에 있는 수많은 외눈박이 거인들을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눈박이 거인과 크리오 마을은 기묘한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그 흉포하고 사납기로 유명한 외눈박이 거인도 무슨 일인지 해달족에게 만큼은 공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해달족은 전투 능력이 미비하여 요즘 들어 나타나는 이상 현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들을 안전하게 이주시키고자 카마실브 사제들이 급하게 찾아왔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카마실브 사제들과 달리 크리오 마을 촌장 헤리오는 느긋할 뿐이다. 되려 카마실브 사제들에게 유능한 전투 교관을 모셔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키고 있다.
제9장 카마실브 사제들
카마실비아. 그곳은 미지의 땅으로 불린다. 그곳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만으로 그곳이 얼마나 귀하고 범상치 않은 곳인지 알 수
있다.
신성한 나무 카마실브가 있는 곳, 자연과 교감하며 숲을 보호하는 존재들.
카마실비아는 그동안 문을 굳게 닫아걸고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했으나 그간의 내부에서의 갈등과 외부의 변화를 보고 깨달음을 얻고 카마실비아로 통하는 모든 길과 관문을 개방했다.
대륙 내에서 그들을 보고 싶다면 나무가 울창한 곳, 혹은 물이 맑은 곳으로 찾아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들은 자연의 수호자이길 자처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더라도 흙과 물이 있는 곳이라면 보호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칼페온 서남부의 검은 기운을 정화하기 위해 마련된 긴잎나무 정찰 초소가 있다.
제10장 베어 마을 사냥 대회
만약 자신이 범상치 않은 사냥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한다면 베어 마을 사냥 대회를 노려볼 만 하다. 사냥꾼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전설의 사냥꾼 리케 베어가 촌장으로 있는 곳이다. 마을의 대다수 또한 사냥꾼이기 때문에 초보자가 가서 배우고 오기에도 좋다.
그들은 사냥꾼인 만큼 어떤 무기류든 다루는 데에 능통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대립하고 있는 적 때문에 최근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베어 마을 근처에 있는 헥세 성역과 마녀의 예배당 때문이다.
그곳에는 헥세 마리와 그녀를 지키는 기사단들이 주둔해 있는데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내며 주변을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관대하고 서글픈 마녀, 헥세 마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자라나는 아이들과 음유시인에게 좋은 영감을 주었지만 특히 모험가와 사냥꾼에게 매혹적이다.
헥세 마리를 쓰러트리면 그녀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냥철이 아닌데도 각지에서 헥세 마리에 도전하기 위한 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러자 베어 마을의 옌센은 꾀를 하나 내었는데 베어 마을 사냥 대회의 주제를 마녀의 기사단으로 변경한 것이다. 헥세 성역에서 마녀의 예배당까지 이어지는 열 가지 시험을 끝까지 통과한 사람이 우승하는 규칙이였다.
리케 베어는 처음에 옌센의 제안에 미심쩍은 듯했지만 곧 소문을 듣고 몰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베어 마을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요즘 함박웃음 꽃이 피었다.
제11장 마지막 전투
조르다인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그는 자신의 몸 안에서 벨모른이 성난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 끝났다. 천천히 감았다 뜨는 시야 사이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덕지덕지 미련처럼 달라붙어 있던 검이 손에서 툭 떨어졌다. 무척 피곤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흐릿하게 조르다인의 눈앞에서 잔상처럼 나타났다.
주황색 ... 아니 그것보다 더 붉은, 타오르는 불꽃보다 더 새빨간 가장 고운 실을 골라서 만들어 놓은 듯한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했다. 이제와서야.... 용서를 구하기도 많이 늦었는데.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만약에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누군가가 조르다인을 일으켰다. 생각은 다시 흩어졌다.
제 12장 다음 여정을 위한 준비
벨모른은 완전히 소멸되지 못했다. 조르다인 어딘가에 아주 깊숙히 봉인되었을 뿐이다. 이긴건가? 싶을 정도로 어딘가 석연치 못한 마무리였다. 다시금 마주친 조르다인은 아주 많이 지쳐보였다.
오로엔은 벨모른을 완전히 봉인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먼저 메디아로 떠났다고
했다.
습관이 무섭다고 했던가, 일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무언가 쫓아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벨리아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연금술사 알루스틴은 크론성보다 더 멀리, 메디아에서 오는 어둠인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아주 깊고 두려운 어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