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우 전수 이벤트] 모험 일지 정리 6. 칼페온 서남부 직할령 1~5 2021-07-15 13:38 이히헷

6. 칼페온 서남부 직할령

 

제1장 조르다인의 복수

모두 괜찮아질 것이라 했다. 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니 별수 없다 했다. 그것은 인사치레나 허례허식 같은 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기도 했다. 친구를, 자식을, 부모를 잃은 사람에게도 괜찮아질 거란 말이 기도문처럼 되풀이됐다.

군대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통곡과 한탄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안도감 같은 것이 어지러이 엉켜 있었다. 이유와 명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바래졌을 만큼 기나긴,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조르다인은 한동안 먼 친척 집에서 지내야 했다. 그 집은 아이가 이미 다섯인 데다 나이가 많은 조부모까지 함께 사는 대식구였다. 친척은 오갈 곳 없는 조르다인을 너그럽게 거둬줬으나 그 식구 모두가 동의한 일은 아니었다. 선뜻 베푼 호의와 달리 넉넉지 못한 형편은 마음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공공연히 군식구인 조르다인에게 그 예리한 끝을 드러냈다. 조르다인은 이대로 내쫓긴다면 당장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조르다인은 아이들이 부모 몰래 꼬집고 때려도, 식사를 모조리 빼앗겨 이틀을 굶었을 때도 말을 하기보다는 참아내는 방법을 배웠다. 그럴수록 조르다인은 마음에, 목 언저리에 무언가 딱딱한 것들이 쌓여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헤집어 봤다면, 억지로 찢은 천에 매달린 실밥들처럼 흉하게 너덜대는 감정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랄수록 더욱 참아내야 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우리 형편에 너를 거둔 것만 해도 우린 충분히 할 일을 한 거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그러니 네가 얌전히 예의바르게 지내야지. 애들이 장난을 친 거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낼 줄 몰랐다. 사람이 은혜를 알아야지. 혹시나 남은 재산이 있을까 싶어 거둬들였더니.... 너 정말 아는 거 없어?"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조르다인의 잠자리는 헛간으로 옮겨졌다. 제대로 바람이 막아지지도 않는 얼기설기 판자로만 지어진 곳에서 지푸라기를 이불 삼아 덮으며 조르다인은 그 날 일어났던 일을 생각했다.

병사들이 들이닥치고..... 아버지가 그 앞을 막아서고.... 어머니가 자신을 다급하게 숨기고 .... 눈 앞이 붉어졌던.

조르다인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광경들이 있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던 아버지의 떨리던 음성과,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무어라 뻐끔거리던 입과, 그 광경이 무서워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감던 자신의 모습이 마치 저주에 걸린 듯이 선명하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달빛이 판자의 틈을 찾아내어 조르다인의 위를 군데군데 덮었다. 칼페온으로 갈수록 세렌디아보다 해가 늦게 진다는데.

조르다인은 상상했다. 계속 그렇게 칼페온으로 가다보면 오늘에서 도망갈 수 있을까? 더욱더 가다 보면.... 다시 그때 전으로 돌아가서 일어났던 일들을 지울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자원입대가 가능한 나이가 되자 조르다인은 훈련병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는 쉬웠다. 검을 쥐고 휘두르다 보면, 그리고 그 끝을 칼페온에 겨눌수록 확실해졌다.

클리프는 그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조르다인은 언제나 목 언저리에서 간질이던 것을 내뱉었다.

"칼페온에 복수를 할 겁니다."

그것은 조르다인의 삶에서 가장 명쾌한 해답이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제2장 메기맨 귀화 작업

칼페온에서는 다양한 종족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한동안 열을 올린 타 종족 귀화 정책 덕분이다. 겉으로는 차별하지 않고 모두가 화합하며 지내자는 우호 정책인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불필요한 전쟁 없이 영토를 늘리기 위한 목적성이 더 컸다. 어쨌든 우아하게 포장된 귀화 정책으로 칼페온은 다른 국가보다 많은 종족과 어울려 살고 있었다.

처음이 어려웠지. 점점 귀화하는 종족이 많아지자 다른 종족들을 설득하기는 더 쉬웠다. 칼페온은 점차적으로 종족 포섭을 확대해갔는데 그 예로 현재 칼페온 서남부에서는 카이아 호수를 기준으로 분포되어 있는 메기맨과 루툼족, 만샤족을 상대로 귀화작업이 한창이다.

메기맨은 거대한 물고기 같은 외형을 지니고 있는데 물 밖에서는 어딘가 둔하고 어벙해 보이지만 물 안에서는 비할 데 없는 포식자였다.

메기맨 귀화작업은 처음엔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우연히 건넸던 포도 주스 한 잔이 메기맨들 입맛을 사로잡았던 덕택이다.

유쾌한 바바오와 물배메기맨을 필두로 많은 메기맨이 칼페온으로 귀화를 자처했다. 메기맨 귀화 담당자인 브루노는 이 기세라면 일 년 안에 귀화 작업이 모두 끝나리라 예상했지만 어디선가 우두머리 쿠베가 나타나면서 메기맨들이 돌연 군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3장 타고난 싸움꾼, 루툼족

싸운다! 부순다! 먹고 즐긴다! 이 세 가지가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종족이 있다. 바로 루툼족이다.

태생이 낙천적이고 호전적인 이들은 하루에 세 번 다른 상대에게 결투 신청을 하지 않으면 겁쟁이 취급을 당한다.

싸우기 위해 먹고, 즐기기 위해 부순다. 과격하지만 그만큼 전투 능력이 다른 종족보다 월등히 높은 그들을 귀화시키기 위해 칼페온은 무던히도 공을 많이 들였다.

적으로 돌리면 여간 까다로운 상대일뿐더러,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은 좋은 목재가 많아 포기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칼페온은 노련한 백전노장 엘린케 비사민을 보내어 루툼 감시 초소를 세우고 루툼족과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인간 장정 셋 정도는 우습게 들어 올리는 루툼족을 감당해 내기엔 이제 막 초소에 배치된 햇병아리 같은 병사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고, 엘린케 비사민은 그런 병사들을 보며 속 터지려고 하는 중이다.

 

제4장 만샤 숲을 다녀간 자

만샤족은 고블린 종족 중에서도 가장 영민하다고 알려졌다. 그들은 만샤 숲에 무리 지어 살았는데, 경계심이 많고 함정과 기습에 능하기 때문에 만샤 숲 일대는 여행 위험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제각각 특이한 가면을 쓰고 다니는데 지위와 역할에 따라 가면의 외형이 다르다고 추측될 뿐이다. 만샤족에게 숲이란 단순한 터전이 아니라 지켜야 할 사명과도 같은 의미였고, 숲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인위적으로 훼손되는 것을 극도로 참을 수 없어 했기에 숲의 수호자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만약 나무가 빼곡해 한 낮에도 어두컴컴한 숲에서 만샤족과 마주친다면 그 자리에 멈춰서서 그들이 위험하지 않다고 충분히 인지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함부로 움직였다간 여기저기 설치된 함정에 되려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칼페온에서도 이런 만샤족들을 괜히 도발하기보다는 근처에 캠프를 세우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접근하는 형태로 진행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만샤족이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칼페온 전역에서 퍼져나가는 중이라고 보고된 광포화 현상과 비슷했다.

만샤족은 언제나 숲 그림자에 숨어 조용히 침입자를 관찰하다가 경고만 주고 끝내던 예전과 달리 모습을 드러내더니 무기를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며 주변을 위협했다.

하루아침에 산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캠프 일대가 무너지면서, 아니, 온통 어둠으로 이뤄진 수상한 이방인이 만샤 숲을 지나가면서부터, 어쩌면 ..... 오우거들이 숲을 파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예견된 일일지도 몰랐다.

 

제5장 벌목꾼의 마을

벌목꾼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트렌트 마을에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작은 새싹이 있었다. 새싹 앞에는 자그마한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의 한 아이가 새싹을 심으면서 표시를 해 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매일 새싹을 보러 와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며 부드럽게 새싹을 쓰다듬어 주었다. 새싹은 그 손길이 너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그래서 새싹은 아이가 왜 오지 않는지, 혹시 자기가 말이 없어서 아이가 싫증 나서 가버린 건 아닌지 걱정했다. 나도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엄청 멋진 무언가가 되거나! 그런데 나는 더 크면 뭐가 되는 거지? 그러자 지나가는 바람이, 옆에 핀 들꽃이, 지저귀는 새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내가 지나갈 때 바람결로 많은 이파리를 만져봤는데 말이다, 내가 보기엔 넌 감자나 당근일 것 같은데."

"아냐. 내가 얘 근처 뿌리를 살살 건드려 봤는데 아직 야무지지 않은 게 나와 같은 들꽃임이 틀림없어!"

"아직 새싹이 볼품없는 걸 보니 잡초일지도 모르지! 다 자라면 내가 이파리 하나 집 짓는 데 써도 될까?"

새싹은 설렜다. 바람의 말대로 감자가 되어도 멋있을 것 같았고 알록달록한 들꽃이 되어도, 튼튼한 잡초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 멋지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마 감자도 되고, 들꽃도 되고, 잡초도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오지 않았고 새싹은 여전히 작았다.

어느 날, 새싹은 지나가던 다람쥐를 보았다. 다같이 바삐 움직이는 개미 떼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도 내게 걸어서 왔었는데. 새싹은 문득 의문이 들어 들꽃에게 물었다.

"우린 왜 움직일 수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바람도, 새도, 다람쥐도 다 움직이는데. 왜 우리는 매일 이 자리에 있어?"

"우린 원래 그런 거야. 쟤네는 원래 저런 거고."

들꽃은 새싹의 물음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툴툴대며 꽃 가꾸기에 힘썼다. 새싹은 원래 그런 게 뭐야?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들꽃이 화낼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새싹은 뿌리를 조금 움직여 보았다. 흙에 감싸인 뿌리는 움직이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간은 움직일 수 있었으나, 뿌리를 땅 밖으로 내놓으려고 하면 너무 아팠다. 들꽃은 땅이 들썩이는 움직임에 새싹에게 가만히 좀 있으라며 짜증을 냈다.

"너 도대체 뭐하는 거야? 뿌리로 물을 빨아들일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해야 이파리를 최대한 넓게 펼쳐서 햇빛을 많이 받을지 생각을 해야지!"

새싹은 들꽃의 말을 듣고는 슬펐다. 그 소리를 듣곤 근처에 있던 지렁이가 무슨 일이냐며 땅 위로 올라와 새싹에게 물었다.

"내게 오던 아이를 찾으러 가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어."

"아! 들은 적 있어. 요정을 만나면 소원을 들어준대."

"요정은 어떻게 만나?"

"글쎄... 사실 나도 본 적이 없어. 아주 오랫동안 산 나무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하지만 그 나무한테는 또 어떻게 가지 .... 새싹은 뿌리를 꼼지락 거렸다. 일단 좀 무럭무럭 커야 겠는데? 지렁이는 새싹을 훑어보더니 조언을 해줬다.

"계속 움직여 봐. 운동을 열심히 하다보면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뭐, 정말 네가 걸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지렁이는 뒷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새싹은 지렁이의 말에 힘을 얻었다. 새싹은 먼저 들꽃의 말대로 양 이파리를 넓게 펴 햇살을 많이 받고, 뿌리로 물을 충분히 머금은 후에 다들 쉬는 밤에는 열심히 운동했다. 그 모습을 보던 지저귀는 새가 다가와 새싹에게 얘기했다.

"뭘 그렇게 힘들게 해?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널 쑥 뽑아서 오랫동안 산 나무에게 데려다줄 수 있어."

"뽑아서?"

"그래, 약간 네가 다칠 수도 있긴 하지만 훨씬 빠를 걸?"

새싹은 상상해 보았다. 지저귀는 새와 함께 하늘을 나는 모습을 편하긴 하겠다. 이렇게 힘들게 운동하지 않아도 되고, 뿌리가 많이 튼튼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땅을 걷기는 무리였다.

새싹은 더 상상해 보았다. 지저귀는 새의 부리에 매달린 채로 흔들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새가 길을 잘못 들면 어떻게 말해주지? 새가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아이를 찾을 수 없으면?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내 스스로 찾아가고 싶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거야."

지저귀는 새가 새싹의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이제 새싹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 묘목이라고 불러야겠는걸? 언제 이렇게 자랐담?"

마침내 묘목은 땅 위에 서는데 성공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얇은 뿌리들은 어느새 땅 위를 걸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고, 이전보다 키도 훌쩍 자랐다. 바람이 묘목을 몰라 보고 스쳐 지나갔다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너구나! 정말 몰랐어. 정말 자그마한 새싹이었는데, 세상에! 어떻게 땅 위에 서 있는 거야?"

묘목은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걸음은 몹시 느렸다. 같이 가주던 지렁이가 하품을 하고, 지루해서 잠시 낮잠을 자다 일어나도 묘목은 겨우 지렁이가 다섯 번 꿈틀거린 거리를 움직였을 뿐이었다. 지렁이는 금방 싫증 내며 가버렸다. 바람은 계속 묘목과 함께했다. 묘목이 힘들어서 넘어지려고 하면 뒤에서 부축해 주었고, 심심할 때는 이곳 저곳 나무 사이를 우아하게 누볐다. 그럴 때마다 풀과 나뭇잎들이 바람에 맞춰 흔들거렸다. 묘목은 바람을 보며 물었다.

"그건 뭐라고 하는 거야?"

"이건 춤이라고 하는 거야!"

"정말 멋지다!"

바람은 그 말에 더 신난 듯이 숲 사이를 빙글빙글 돌았다. 둘은 오래오래 걷다가 마침내 오랫동안 산 나무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산 나무가 물었다.

"안녕, 작은 나무야,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니?"

"요정을 만나고 싶어요!"

"요정은 왜?"

"소원을 들어주니까요!"

"무슨 소원을 빌고 싶니?"

"제게 와줬던 아이를 만나러 가고 싶어요."

묘목의 이야기를 들은 나무가 웃었다. 웃을 때마다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잎이 서로 부딪쳐 쏴아아 하는 시원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넌 이미 훌륭히 걷고 있는 걸. 이제 찾아갈 수 있을 거란다."

"아, 정말! 이제 걸어 다녀도 아프지 않아요!”

“넌 스스로 꿈을 이루는 아이구나.”

오랫동안 산 나무가 다시 쏴아아 하고 웃자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작은 나무의 몸을 덮었다. 작은 나무는 간지러워 꺄르르 웃었다. 웃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 한 집 앞에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하고 기웃거리는데 창문 안으로 작은 나무가 찾아 다니던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게 보였다.

작은 나무는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더니 창가로 다가왔다. 작은 나무는 기뻐서 얘기했다.

“내가 널 찾아왔어! 내가 널 만나러 왔어, 반가워!"

“안녕, 귀여운 친구야. 날 만나러 왔다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작은 나무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예전에 새싹일 적에 자신을 찾아와 주던 때를,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을,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얼마나 따스했었는지를.

아이도 작은 나무에게 얘기했다. 나도 너를 정말 네가 보고 싶었어, 다시 꼭 가고 싶었었는데 몸이 아파서 가질 못 했어. 난 이제 어쩌면 걸을 수 없을 거래.

아이는 슬퍼서 울었다. 작은 나무는 슬퍼하는 아이가 슬퍼서 울었다. 나는 네 덕분에 걷게 되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

“이번엔 내가 널 도와주고 싶어.”

작은 나무는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부축해주고 싶었다. 그러자 팔이 쑥하고 생겨났다. 작은 나무는 아이가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튼튼해지고 싶었다. 이번엔 자잘한 뿌리가 뭉치더니 단단해지고 두꺼워져 걷기 더 편해졌다. 작은 나무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우리 춤을 추자!”

작은 나무는 바람이 보여줬던 것처럼 살랑이며 움직였다. 어딘가 어설프고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춤이었지만 아이는 즐거워서 소리내 웃었다. 작은 나무는 무척 행복했다. 작은 나무의 움직임에 따라 나뭇잎들이 흩날렸다.

“우리 다 같이 춤추자!"

그러자 작은 나무의 나뭇잎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작은 나무의 이파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서 나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나무들과 함께 작은 나무와 아이가 즐겁게 노래 부르며 춤추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팠던 아이의 다리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는 작은 나무를 끌어안았다.

그 후 작은 나무는 엔트 정령이라고 불렸다. 아직도 종종 달빛이 고운 밤이면 엔트 정령은 엔트 나무들과 춤을 춘다고 전해진다.

때로는 모두가 잠든 밤 마을에 놀러오기도 하는데 엔트 정령의 나뭇가지를 선물 받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이히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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