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우 전수 이벤트] 모험 일지 정리 7. 메디아 남부 지역 1~4 2021-07-15 13:41 이히헷

7. 메디아 남부 지역

 

제1장 메디아의 수도, 알티노바

알티노바의 건설 소식이 알려졌을 때, 수많은 기대와 함께 네루다 셴의 뒤를 따라다닌 건 다름 아닌 비아냥 섞인 조소였다. 네루다 셴을 비웃는 자들의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거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커다란 도시를 지어 봤자 상인이 세우는 도시 아니냐는 것이었다.

발렌시아와 칼페온 사이의 전쟁에서 커다란 업적을 세우고 항간에서는 바리즈 2세보다 더 큰 신임을 얻고 있는 네루다 셴이었지만, 그 시절 메디아 성은 아직 건재했다. 바리즈 왕가와 슈라우드 기사단은 주민들의 충성을 사지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오히려 이렇다 할 도시가 없기 때문일까, 메디아의 중심은 메디아 성이라는 믿음이 주민들의 기저에 깔려 있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커 봤자 무역 거점용 마을, 아니면 상인들만 모여 사는 마을이 되지 않겠소?"

결코 그럴 규모의 공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누군가 부러 큰 목소리로 말하며 네루다 셴의 곁을 지나쳤다. 그자의 일행들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직 황무지가 더 많은 구역을 차지하는 공사 터에 경박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며 흩어졌다.

셴 상인회의 일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살폈다. 셴 상인회의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감히 네루다 셴의 의견을 꺾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살피는 것과는 다르게 네루다 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미동 하나 없었다. 그에게 있어 비아냥, 비웃음, 조롱은 하등 상관할 게 아니었다.

네루다 셴의 고요한 눈은 현재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시작부터 웅대한 것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그가 중요히 생각하는 건 시대가 흘러가는 모습이었다. 그는 무릎 높이만큼 쌓인 낮은 담장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말했다. 시대의 흐름을 잘 읽기만 한다면.....

"...이 작고 사소한 벽돌 담장도 언젠가는 거대한 성벽으로 여겨지리라."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알티노바가 완성되었다. 도시가 모습을 갖추었다는 소식이 메디아 전역에 퍼졌을 때, 가장 먼저 모인 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상인이었다. 그들은 네루다 셴의 명성을 따라, 그리고 상인회의 집결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이득을 따라 알티노바에 터를 잡았다. 자연스레 커다란 시장이 구축되었다.

그러자 주민들이 삼삼오오 성벽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야만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으며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성벽 안은 그들에게 있어 축복과도 같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종족을 가리지 않은 다양한 주민들이 북적거리며 황무지를 닮아 누렇기만 하던 알티노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다음 차례는 일자리를 찾으러 온 일꾼들이었고, 그다음은 수많은 모험가와 여행자들이었다.

어느새 알티노바는 메디아에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대표 도시가 되어 있었다. 메디아의 수도라고 불러도 충분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명성과 위용이 칼페온의 수도와 견줄 만하다는 평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알티노바와 네루다 셴을 비웃는 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제2장 끌려가는 사람들

어둠은 공평하게 찾아왔지만, 어둠 이후의 절망적인 상황은 제각기 마다 달랐다. 아분 마을의 사람들이 메디아 주민 중에서도 가장 불행하다고 불리는 이유도 삼 일의 어둠보다는 그 이후의 상황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고 울부짖거나 공포에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새도 없었다. 어둠이 걷히자마자 커다랗고 위협적인 야만족들이 무장을 한 채로 아분 마을에 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야만족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아분 철광산에 들어가더니, 곧이어 메디아를 떠나기 위한 짐을 싸고 있던 주민들을 한 곳으로 몰았다. 그리고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남자들을 모두 골라 아분 철광산으로 끌고 갔다. 부상자, 한 가정의 가장, 아직 어린 청소년 등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용기를 내어 반발했지만, 그들의 날카로운 무기와 단단한 방어구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끌려간 사람들은 줄줄이 철광산으로 들어가 곡괭이를 손에 쥐었다. 야만족이 손짓으로 내린 명령은 단 하나였다.

'검은 눈물을 캐라.'

목표치나 기간이 한정되지 않은 명령이었다. 누군가는 곡괭이를 가지고 습격을 하려고도 했지만, 야만족의 감시와 압박으로 인해 빈번히 물거품이 되었다.

인간 일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말이 퍼진 건지 거대한 몸집의 관리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관리자는 인간 일꾼들에게 자비를 나누지 않았다. 혹여나 도망치려는 일꾼이 나타나면 매섭게 찾아내 끔찍한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그 야만족에겐 사형 집행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분 철광산은 어느새 폐철광산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은 끊임 없이 떠나갔고, 폐철광산에 끌려 간 가족이 있는 주민들만 마을에 남아 하염 없이 기다렸다. 아분 마을의 고통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3장 검은 눈물과 마르니

"아니, 부인! 이 팔찌는 ....!"

알티노바의 광장 앞에 모여 메디아의 암담한 앞날에 대해 떠들던 귀족들의 목소리 사이로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남루한 행색을 한 노인이었다. 그는 삼 일의 어둠 직후 알티노바로 몰려들기 시작한 메디아의 피난민들과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무엇을 뒤집어쓴 건지는 몰라도 고약한 약품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귀족들은 티 나게 몸을 물리며 불쾌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안 그래도 터전을 잃은 피난민들의 때 묻은 모양새를 싫어하던 그들이었다.

"행색은 비루해도 보는 눈이 꽤 있나 보오?"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귀족들 사이로 노인이 주목한 팔찌를 차고 있던 부인만이 으쓱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과 가까이 마주 섰다. 살짝 소매를 걷어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보석을 티 내는 모습이었다. 메디아의 뜨거운 햇빛을 반사하는 검은 보석이 반짝였다.

"과찬입니다! 가까이서 봐도 되겠습니까?"

"뭐, 괜찮소. 얼마 전 힘들게 구했지. 발렌시아산 흑요석이 박힌..."

"예? 무슨 소립니까 부인?"

노인이 콧대 높은 웃음을 지으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 부인의 말을 싹둑 잘랐다. 부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검은 눈물입니다!"

곧이어 부인의 주변이 작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검은 눈물. 검은빛을 띠는 흑진주 모양의 광석 중 하나이다. 아분 마을의 철광산에서만 발견되며, 별다른 값어치가 없는 저렴한 장신구에 쓰이는 평범한 광물인 거로 유명했다.

어느새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달아오른 부인이 칼페온산 홍학 깃 부채를 열심히 부치기 시작했다. 이름값 하는 무역 상인을 통해 비싼 돈을 주고 샀던 팔찌였다. 귀하게 구했다며 주변에도 몇 날 며칠을 자랑했거늘!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던 사람들이 어느새 고개를 돌려 킥킥대며 웃는 것이 보이자 부인은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노인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보석 감정이라도 할 줄 아는 노인네라고 생각했더니, 순 미친 사람이군! 헛소리라면 알티노바의 예언가로도 충분하니 저리 가시오!"

그러자 노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런 오해가 생겼나 보군요. 저는 지금 흑요석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을 본 겁니다! 부인의 팔찌에 장식된 검은 눈물은 아주 세밀하게 정제된 순도 높은 것.... 감히 말씀드리지만, 부인이 삼 일의 어둠에서 안전할 수 있었던 건 이 검은 눈물 덕분입니다!"

순간 부산스럽던 분위기가 멎고 정적이 찾아왔다. 메디아 주민에게는 모두 상처로 남은 삼 일의 어둠이었다. 노인은 때를 놓치지 않고 침을 튀겨대며 더 바쁘게 입을 놀렸다.

"부인, 유독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잃은 것이 얼마 없지 않으신지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긴 한데..."

"역시! 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순도 높은 검은 눈물은 삼 일의 어둠을 비껴가게 해준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노인에게로 향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바리즈 왕가는 모두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왕족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싸구려 보석으로 여겨졌던 검은 눈물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죠. 또한 알티노바에 자리 잡기 시작한 저 야만족들은 어떻고요? 그들이 아분 철광산을 차지한 이유가 모두 검은 눈물을 차지해 다음 어둠이 찾아왔을 때 살아남고 메디아를 독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이해가 가십니까?"

어느새 모두가 부인의 손에 차인 팔찌를, 정확히는 검은 눈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저도 만약 이 검은 눈물 목걸이가 없었더라면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테지요. 제게 남은 마지막, 저 자신마저도 말입니다..."

아무런 짐도 들고 있지 않은 노인의 목에는 커다란 크기의 검은 눈물이 박힌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집안 어딘가에 있을 싸구려 검은 눈물 장식품을 떠올렸다. 메디아 사람이라면 모두가 하나쯤 가지고 있었을 물건이지만, 어쩐지 자신이 삼 일의 어둠 속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그 검은 눈물 덕분인 것만 같았다. 점차 소란스러워지는 분위기를 틈타 노인은 무례를 범해 죄송하다며 짧은 인사를 전한 후, 아분 마을 방향으로 사라졌다.

이후 메디아 전역에서 검은 눈물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이 알티노바에 다녀간 후, 불과 일주일도 흐르지 않았을 때였다.

 

제4장 메디아의 마지막 왕자

"바리즈 왕가가 종래에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어도... 그들의 이야기가 항상 안타까웠던 건 아니라오."

남자의 말과 동시에 누군가가 쯧쯧, 혀를 찼다.

"그래, 딱 이런 바닷가였지. 푸른 연청빛의 바닷물이 파도치는 소리가 낱말 사이사이에 배어드는.. 하얗게 빛나는 백사장과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은 마음에 평화로움을 주었소. 나중에 꼭 방문해 보시오. 메디아 북동쪽에 가면 말이지."

"또 저 소리라니, 지겨워 죽겠군!"

"지금은 메디아 해안이라 부르지만, 당시엔 바리즈 해안이라 불렀소. 돌아가신 선왕 바리즈 2세와 왕자인 바리즈 3세가 산책을 즐기던 곳이었지. 나라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모르겠소. 왕가를 뒤따라 걷다 보면 모든 걱정이 싹 사라지곤 했지. 아, 말했던가 모르겠소. 나는 왕가를 모시던..."

"나 참, 프라이드인지 슈라우드인지."

"슈라우드 기사단 출신이오. 평생을 메디아에서 살았소. 검과 방패를 들고 나라와 왕가를 지켰지! 자네들이 뭘 알겠소? 나의 방패 뒤로 국왕이 서 있고, 앞으로는 메디아의 햇빛을 받은 모래들이 반짝이지. 그 사명감이라는 건 직접 겪지 않았던 자들은 모를 거요. ...그래서인지 지금 홀로 남은 바리즈 3세를 보면 참 안타깝소. 메디아의 미래를 책임질 거라 생각했던 왕자님께서 메디아 주민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고 있으니 말이오. 그 어린 왕자님이 무얼 알겠소? 안 그래도 모든 왕가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사라져버려 힘들 텐데, 우매한 사람들은 왕자님에게 분노를 퍼붓지. 누군가 왕자님을 돌봐야만 할 텐데, 이를 어쩌란 말..."

"웃기고 있네! 어둠이 걷히자마자 메디아를 버리고 헐레벌떡 이곳으로 건너온 건 그 대단한 기사단이었던 자네 아닌가? 자, 인제 그만 바다에 그물부터 치게! 발레노스로 왔으면 발레노스의 법을 따라야지! 전갱이가 풍년일 때라 한시가 바쁘네. 빨리 움직이게.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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