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발렌시아 동부 지역
제1장 의문의 폭발, 필라 쿠 감옥
단 한 명을 가두기 위해 먼 사막을 건너고, 수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국고에 잠들어 있던 금은보화를 팔아 감옥을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시아의 국민은 아무런 불평불만을 뱉지 않았다. 그만큼 카프라스의 악명은 드높았고, 도시의 주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그를 사막 깊숙한 곳에 넣어 놓길 원했다.
카프라스가 감옥으로 이송되던 날, 도시 사람들은 창문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였다. 태양이 환히 내리쬐는 대낮인데도 한밤중보다 고요했다.
발렌시아의 노인들은 필라쿠 감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곧잘 연금술사 카프라스를 입에 올리곤 했다. 노인들이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필라 쿠 감옥에 대해 듣기로 카프라스 단 한 명만을 가두기 위한 감옥이라는 것이다.
건국 신화인 양 신비롭게 들리는 이 이야기가 꽤 많은 사람에게 신빙성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막 너머 외진 곳에 웬만한 성채보다도 삼엄한 필라 쿠 감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잘 훈련된 카탄 군이 감옥을 지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그 안에 각종 흉악범과 과거 카프라스의 가르침을 쫓는 추종자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필라 쿠 감옥은 대사막의 동쪽을 감싸듯 솟아있는 바위산을 깎고 뚫어 만들어졌다. 단단한 바위를 뚫고 뚫어 지하로 깊게 들어가는 구조였고, 죄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더 깊숙한 지하에 수감되었다.
사막에 내리는 태양의 축복은 깊숙한 지하 감옥에 미치지 못했고, 감옥 안은 항상 음습하고 서늘했다. 밤이 되면 초겨울처럼 싸늘해졌고, 죄수들은 고함지르거나 알 수 없는 주문을 연신 중얼대서 항상 불길한 소란이 가득 차 있었다.
사막의 가장 밑바닥이면서, 어떠한 희망도 없는 필라 쿠 감옥은 그 자체로 이 세상의 밑바닥처럼 보였다. 죄수들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으니 오히려 좋다며 킬킬댔다.
인간이길 포기한 흉포한 범죄자도, 카프라스의 수제자를 자처하던 추종자도 그러한 필라 쿠 감옥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을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악한 소서러 일레즈라가 필라 쿠에 당도했을 때, 필라 쿠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암흑보다 더욱더 짙은 어둠을 맞이해야 했다.
제2장 발렌시아 수도
오랜만에 수도 발렌시아에 발을 들였을 때, 그곳은 세상을 집어삼킨 검은 죽음과 30년 동안의 전쟁을 치른 국가의 수도처럼 보이지 않았다.
성벽은 여전히 견고했고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자세는 굳건했으며 병사들이 훈련하는 우렁찬 고함이 성벽을 타고 울렸다. 백성들은 친절하고 차분했으며 여유로웠다. 먹지 못해 얼굴 뼈가 드러난 자가 없었으며 다들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수도 발렌시아는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과거 찬란했던 강대국의 면모를 많이 회복한 모습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 검게 썩은 시체가 나뒹굴고, 상처 입은 군인들이 구걸했으며 백성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는 고고함을 되찾은 발렌시아의 모습에 터져 나오는 감탄을 연신 삼키며 왕궁으로 들어섰다. 발렌시아의 천문학자들이 우선 바르한 왕자를 알현해야 한다고 했다.
왕자는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고, 가끔 움직이는 몸의 선은 기품있게 흘러갔다. 과연 발렌시아 왕족이다.
나를 안내한 발렌시아의 천문학자는 다시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끔 노력한 왕자의 업적을 칭송했고, 왕자는 내게 왕국 천문학자와 함께 발렌시아의 밤하늘을 들여다볼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감사의 예를 올리고 자리에서 물러나려는 순간 바르한 왕자의 눈을 본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휩싸였다.
그는 나나 내 옆의 천문학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어째선지 그의 눈빛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한 망원경처럼 시선은 앞에 있는 것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나를 향해 있지만 시선은 나를 보고 있지 않다니. 내가 지나치게 예민했던 걸지도 모른다.
...(중략) 그날 밤, 천문학자의 제안에 따라 발렌시아의 야시장에 들러 술을 한잔하기로 했다. 초저녁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음식과 술을 즐기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란 속에서 술 몇 잔을 마시니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켄타우로스, 무이쿤, 추방당한 왕자 카얄 네세르, 필라 쿠 감옥의 흉흉한 소문 같은 것들이었다.
한창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올렸다. 주민들은 희망적이거나 긍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
- 발렌시아로 떠난 칼페온의 천문학자가 쓴 일기 중
제3장 유황 광산의 용암족
수도 발렌시아 북쪽에 위치한 루드 유황 광산은 근처에 위치한 가비냐 화산의 영향으로 언제나 뜨거운 유황과 가스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살 수도 없을 만큼 열악한 조건의 유황 광산이지만 연금술사들이 항상 필요로 하는 질 좋은 유황이 나기로도 유명하다. 루드 유황 광산의 유황은 샛노랗고 순도가 높아 실력 있는 연금술사라면 루드 유황 광산의 유황만을 취급할 정도다.
때문에 발렌시아는 루드 유황 광산과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대대적인 채굴 사업을 벌였고, 그로 인해 큰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 인간이 도저히 작업할 수 없는 환경에서 유황을 얻기 위해 고용된 것이 용암족이었다. 그들은 뜨거운 곳을 좋아했고 유황의 가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루드 유황 광산에서 채광된 유황들은 발렌시아로 들어와 연금술사들에게 팔 수 있도록 소분됐다. 잘 포장된 유황들은 대사막을 횡단하거나 샤카투 행단을 거쳐 메디아의 알티노바로 흘러들어갔다.
사막을 건너 온 유황은 타리프 마을의 소서러들과 연금술사, 세렌디아와 칼페온으로 향하는 상인들에게 비싼 가격에 팔렸다. 소서러와 연금술사는 자신의 성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유황을 썼고, 상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유황을 썼다.
결국 발렌시아에서 출발한 유황이 칼페온에 도착할 때 쯤이면 유황의 가격은 기존 가격의 수십, 수백배 이상으로 부풀려지곤 했다. 부유한 자는 그 값을 지불했고, 가난한 자는 발품을 팔아 유황을 공급하니 용암족의 손에 발렌시아부터 칼페온에 걸친 방대한 지역의 경제가 달린 셈이다.
그런데 최근, 안그래도 값비쌌던 유황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용암족을 관리하는 작업반장 우스투오반은 그 원인이 용암족의 파업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던 용암족들이 일을 게을리 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괴상한 장치를 달고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여파로 유황과 엮인 물자들의 가격이 요동쳤고 거대한 자금의 움직임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의견을 냈다.
누군가는 용암족이 유황의 가치를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유황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참을성 많던 용암족 조차 반란을 일으킬 정도의 고된 노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배후자가 용암족을 움직여 경제를 쥐려고 한다고 말했다.
제각기 뻗쳐나가는 학자들의 주장들 가운데에서도 공통된 이야기가 있었다. 대사막을 뒤덮은 혼돈이 기어코 루드 유황 광산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하는 이야기다.
제4장 발렌시아 왕가의 황금 열쇠
추후 업댓
글자수제한으로 퀘스트 목록까지 따로 정리 -> https://blog.naver.com/pery13/222430287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