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우 전수 이벤트] 모험 일지 정리 1. 발레노스 자치령 2021-07-15 12:56 이히헷

1. 발레노스 자치령

 

 

제1장 여정의 시작

요즘에야 발레노스 출신이라고 하면 시골 촌뜨기라고 무시받기 일쑤지만 아주 먼먼 옛날, 발레노스는 낙원으로 묘사됐다.

마르지 않는 황금과 풍요로운 산천초목, 무엇을 심던 잘 자라는 비옥한 땅과 바닷가와도 밀접해 수산물도 부족하지 않던 곳.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부유해서 농사일과 낚시가 소소한 취미거리인 곳.

주변에 높다란 산맥들로 다른 국가의 침략으로부터도 안전했으며 배를 곯는 자들도 없고 문을 열고 다녀도 도둑이 없던 발레노스의 이야기들은 이제 빛바랜 책장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벨리아 앞바다에서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촌장인 이고르 바탈리는 이것도 코론성의 저주일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자들이 기억을 잃은 채로 헤맸다. 각자가 기이하고 특출한 힘을 가진 자들, 흑정령이라는 고대의 존재와 함께 다니는 자들,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일컬어 모험가라고 불렀다.

 

 

제2장 아그리스 지역의 우두머리

벨리아와 세렌디아를 오가는 무역 상인, 마티어스는 덜그럭거리는 마차를 몰며 콧노래를 불렀다. 벨리아의 어린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부르는 노래였다.

어두운 밤에도 빛나는 빨간 코를 알아?

얼마나 빨간지 불붙은 줄 알았지 뭐야!

풀숲에 들어가도 가려지지 않는 빨간 코를 알아?

얼마나 빨간지 방울토마토인 줄 알았지 뭐야!

그러다가 정말 풀숲에서 빛나는 빨간 동그라미가 보이자 마티어스는 서서히 마차의 속도를 늦췄다. 낼름 풀숲으로 숨는 빨간 코가 보인다. 하지만 그 코가 숨긴다고 숨겨지나? 마티어스는 속으로 웃으면서 줄 만한 게 있는지 마차 안을 뒤적였다.

유달리 장사가 잘되던 날이었다. 풍요의 신, 아그리스의 축복이 붙었는지 실어 날랐던 물건들은 텅 비고 그만큼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흥이 돋아서 절로 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마티어스의 엉덩이가 씰룩였다. 한참을 뒤적여봤지만 영 잡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구석에 먼지와 뒤섞인 작은 원형 통이 눈에 띄었다.

사탕 통이었다. 내다 팔던 것들 중에 이리저리 깨지고 부딪쳐서 결국 팔지 못하고 구석에 던져놨던 게 생각났다.

오래된 거라 상했을까 싶지만 임프니까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임프들에겐 상한 사탕이 더 맛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사탕 하나를 골라 풀숲으로 내밀었다.

"자, 와서 먹어봐. 아주 귀한 거야. 칼페온산 사탕이거든! 저기 벨리아 애들도 못 먹어봤을걸."

그러자 쭈뼛거리며 풀 숲을 해치고 작은 임프가 다가왔다. 마티어스의 허리까지도 못 오는 작은 키였다. 정말 노랫말처럼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띌 빨간 코를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한 번 마을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받고 있던 것을 구해준 후로 빨간코는 마티어스가 마차를 타고 지나다닐 때마다 슬며시 얼굴을 내비쳤다.

아마도 가끔 이렇게 건네는 주전부리들이 탐 나서겠지만. 마티어스는 내친김에 그를 빨간코라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처음에 빨간코는 마티어스마저 자신을 놀리는 줄 알고 충격받은 얼굴을 했지만 마티어스는 모르는 소리 말라며 그에게 훈계를 했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당당해져야 돼! 매일 열심히 운동해서 네가 쑥쑥 커지게 되면 말이다, 그땐 네 이름이 빨간코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널 놀리지 못할 거야."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처음엔 호기심에 다가왔다가도 곧잘 조롱하는 어린아이들의 철없음에 상처 받던 어린 임프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아그리스 지역을 공포로 몰아넣는 광포한 우두머리가 된 빨간코에 대한 이야기다.

 

제3장 서부 경비 캠프의 지휘관

진중함, 믿음직스러움, 정의로움, 결단력, 굳센 의지들을 합치면 클리프라는 사람이 된다. 세렌디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한 명인 그는, 지난 칼페온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다. 그랬기에 그가 발레노스의 변방 지역인 서부 경비 캠프로 발령이 났을 때 모두가 의아하게 여긴 것은 당연했다.

위협적인 외세의 공격에서 세렌디아를 지킨 것도, 불타오르는 성에서 자렛 공주를 구한 것도, 중립 지대에서 다리를 끊어 칼페온 군의 허리를 차단해 대승을 거둔 것도 대장군 클리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자 그가 못해도 하이델에서 옛 왕을 도와 세렌디아를 재정비하고 이끌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왜? 왜 가야해? 왜!"

그 질문을 던진 것은 클리프가 아니라 그와 함께 전쟁터를 누빈 오랜 친구 자비에로 비텔로였다. 그는 클리프가 발레노스로 떠나기 위해 한 켠에 쌓아둔 짐들을 보았다. 대장군의 짐이라고 하기엔 간소하고, 초라했으며, 짐을 들어줄 시종조차도 없었다. 그는 덤덤한 클리프 대신 한참을 발을 구르고 고함을 지르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제풀에 지쳐서 주저앉았다.

자비에로 비텔로의 입에서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울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내쫓길 이가 아니었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피와 눈물을 뒤집어쓰고 나라를 위해서 구르고 싸웠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고작 이런 대우였다.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온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전쟁터로 나가라고 종용했다.

클리프의 나이는 이제 퇴역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프는 아무 말 없이 젊은 집권자, 조르다인이 내민 검을 받아들었다.

클리프는 조르다인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자원입대한 소년의 얼굴은 아직 앳되어 보였는데, 눈빛만은 생생했다. 부모가 전쟁에 휩쓸려 고아가 됐다고 했다. 모두가 그런 시대를 살았다. 특별히 안타까울 것도 없었다.

소년은 오래 굶었는지 비실비실했다. 손목은 가늘어 병장기 하나 제대로 쥐지도 못했고 다리 힘이 없어서 훈련받을 때도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강단이 있었다. 그는 마침내 훈련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함을 인정받아 기사 자리에 올랐다. 그를 축하하며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칼페온에 복수를 할 겁니다."

젊은 기사는 날로 공을 세워 중앙에 진출했다. 정세를 살피는 노련함,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기지, 사람들을 통솔하는 언변력을 눈여겨본 클리프가 왕에게 그를 추천했던 덕택이다.

그는 마치 몸에 맞는 옷을 찾았다는 듯이 무서울 정도로 성장세를 타 자리를 잡았다. 마침대 옛 상관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가진 그가 발레노스 서부 경비 캠프로 가라며 클리프에게 검을 내밀었을 때, 클리프는 가만히 물었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

"칼페온에 복수를 할 겁니다."

예전과 똑같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때와 같을까? 알 수 없었다.

 

 

제4장 봉인된 힘의 해방

은둔의 숲에는 늘 안개가 자욱했다.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를 안개가 언제나 숲과 함께 공존했다. 안개 너머로 가끔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외에는 발걸음도 뜸한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둥 같은 괴성이 숲에 울려 퍼졌다. 사람 울음소리라기엔 너무 컸고, 짐승 소리라기엔 또 사람에 가까웠으며, 그렇다고 다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엔 묘한, 그런 비명이었다. 근처에 있던 서부 경비 캠프에 병사들이 파견되었다. 길게 이어진 밧줄 하나에 서로를 의지해 걸어야 할 만큼 안개가 유달리 짙은 날이었다.

그러다가 병사들은 곧 깨달았다. 캠프에서 들었던 소리도 커서 분명 근처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섣불리 내린 판단이었다는걸.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는 굉음에 병사들은 급기에 두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마침내 목소리의 정체를 찾았을 때 병사들은 도망쳐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얼이 빠졌다.

칼페온 서남부에서나 서식한다는 오우거가 나무 정령들에게 둘러싸여 맞고 있었다. 병사들이 캠프에서 들었던 소리의 정체는 오우거가 맞을 때 나는 비명소리였다.

오우거의 피부는 철갑과 같아서 뚫기가 쉽지 않다는데 나무 정령들은 그런 오우거를 우습다는 듯이 다루었다. 오우거가 피하려고 하면 나무 정령의 가지가 날카로운 회초리처럼 오우거의 등을 내리쳤고, 오우거가 그 가지를 잡으려고 하면 다른 곳의 잎사귀가 오우거의 머리를 찰싹 때리는 식이었다.

마침대 오우거가 대항하기를 멈추고 도망가자 나무 정령들은 그를 뒤쫓지 않았다. 대신 나무 정령들이 한곳으로 모이더니 그 무지막지한 가지로 오우거가 가로막고 있던 절벽 아래를 때리기 시작했다. 가지가 내려칠 때마다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돌덩이들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병사들 중 어느 한 명도 도망갈 생각을 못 했다.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두려운 장면이었다.

마침대 절벽 안에서 무언가가 드러났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큰 나무 정령 하나가 내려친 가지에 그것마저 부서지면서 그 뒤로 거대한 통로가 드러났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나무 정령들은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어디론가 쿵쿵 거리며 사라졌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문물을 구축했다는 고대인, 그들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석실이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고대인의 석실을 조사하기 위해 세렌디아에서 파견된 자렛 도몬가트는 나무 정령들이 깨트렸다는 파편들을 들여다보았다. 석실을 봉인하던 문의 역할을 하던 것으로 보였다. 지금 것과는 다른 문자와 생소한 그림들이 적혀 있었다.

자렛은 고고학자들을 수소문했다. 나름 이름난 고고학자들을 불러 모았지만 아무도 파편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다. 그러다 에단이라는 자가 찾아왔다.

그는 가넬, 드워프, 샤이족으로 이뤄진 기묘한 자신의 일행에게 고대인의 석실 조사권을 단독으로 위임한다면 석실 안에 있는 것들을 해석해 주겠다 약속했다.

고대인의 석실에 놓인 유물들은 감히 값을 매기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 가장 깊은 방, 알 수 없는 힘으로 떠 있는 유물은 아무 사전 지식이 없는 자렛이 보더라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런 유물을 두고 자신과 거래를 하려고 들다니. 자렛은 에단의 말에 코웃음치며 문의 파편을 내밀었다. 해석을 하지 못한다면 세렌디아의 공주인 자신에게 방자하게 굴었다며 모욕을 줄 참이었다. 하지만 자렛의 예상과는 달리 에단은 망설임 없이 파편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더니 거기에 적힌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마침내 문이 열리리라. 우린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예언은 되풀이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제5장 술렁이는 벨리아

벨리아 마을 근처에 위치한 숲이 약탈의 숲이라고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때부터 고블린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 고블린들은 자신의 터전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함부로 들어온 자들을 용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뿐이라 서로가 적당 선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불편하지만 쫓아낼 수도 없으니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고블린들이 붉은 눈을 하고 무기를 든 채 약탈의 숲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것은 약탈의 숲 근처에 있던 애화저 농장이었다. 고블린들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 지르며 벨리아 농장지대까지 밀고 들어왔다. 피해가 계속되자 마을 사람들은 일꾼으로 고용한 고블린마저 의심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꾼 고블린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꾼 고블린들은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빼앗길까 걱정하는 부류와 내쫓길까 눈치를 보면서도 약탈의 숲 고블린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무리로 나뉘었다.

하지만 그 두 무리 중 누구도 사람들이 약탈의 숲 고블린들이 무어라 외치는 건지 물어보면 입을 꾹 다물었다. 마을의 자경단인 한스가 어르고 달래도, 주민들에게 일꾼 고블린을 추천한 산토 만지가 겁주고 윽박질러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분위기가 점점 흉흉해지고 있었다. 누구도 집 밖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중 고블린 일꾼 나티샤는 자신의 어린 주인 마리아노를 걱정했다. 마리아노의 부모는 나티샤에게 아이를 맡긴 채 바다로 떠난 참이었다. 한 번 항해를 하면 한두 달간은 오지 않았기에 이 상황으로부터 어린 주인을 지킬 이는 자신밖에 없었다.

길거리의 고양이와 강아지가 배고플 거라며 자신의 밥도 선뜻 양보하는 착한 주인이었다. 나타샤는 어린 주인이 안전하길 바랐다. 그래서 파도도 고요한 달빛이 아름다운 날, 고블린들의 공격도 잠잠한 밤에, 침대에 누운 마리아노를 일정한 박자로 다독이면서 나티샤는 남몰래 속삭였다.

"고블린의 왕이 긴 잠에서 깨어났대요. 기아스는 악몽 속에서 태어났대요. 검은 힘을 가진 자를 기, 기아스가 찾고 있대요. 기아스가 그 자의 힘을 갖기 전까지 누구도 발레노스를 나가지 못한대요. 만약 왕의 언약을 어겨서, 인간에게 얘, 얘기한다면 반드시 보복을..."

다음 날 아침, 마리아노가 눈을 떴을 때 나티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찢어진 커튼만이 펄럭였다.

 

글자수제한으로 퀘스트 목록까지 따로 정리 -> https://blog.naver.com/pery13/222430277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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