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우 전수 이벤트] 모험 일지 정리 9. 발렌시아 서부 지역 2021-07-15 13:50 이히헷

9. 발렌시아 서부 지역

 

제1장 발렌시아로 가는 길

알티노바의 동쪽으로 난 얕은 바닷길은 메디아와 발렌시아를 나누는 국경의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발렌시아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사실 중 하나이다. 모든 질서가 무의미해지는 땅 메디아와 강력한 네세르 왕정 아래 모든 것이 통치되는 대륙 발렌시아, 이렇게 상극인 두 나라가 고작 바닷길 하나로 서로 맞대고 있는 모양이란!

나 역시 알티노바 관문의 경비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 정말 놀랐었다. 지나가는 모험가들에게 저 바다가 국경이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발렌시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더 험난한 길을 건너야 한다는 것, 그러니 저 국경은 큰 의미가 없다. 끝없는 협곡을 굽이굽이 건너면 대사막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수도 발렌시아는 이 대사막을 지나지 않고서는 다다를 수 없다. 발렌시아는 사막이라는 광활하고도 두터운 성벽에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발렌시아에 가기 위해서,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준비물에 대해서 알아보자. 보통 사막은 뜨겁기만 할 것으로 많이들 오해한다. 대사막의 낮은 태양을 품은 듯 강렬하게 타오르지만, 밤에는 마음마저 얼어붙을 정도로 혹독한 추위... (이하 생략)

- 알리바 저, "사막을 여행하려는 당신에게 필요한 안내서"에서 발췌

 

제2장 열쇠의 행방

대 발렌시아 왕국의 왕자이자, 관문의 수호자 바르한 네세르의 이름으로 전한다.

얼마 전 괴한들이 나의 열쇠를 운반하던 하르난 상단을 습격하고 훔쳐 간 사건이 발생했다.

어떤 도적놈들인지 모르겠으나 나의 물건에 손을 댔다는 것은, 대 발렌시아 왕국에 대한 모욕과 능멸로 받아들이겠다.

나는 발렌시아 서부 모든 지역의 군을 동원해 너희들에게 죗값을 받아낼 것이며, 이는 너희들의 피로 치르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치고 물건을 돌려놓는다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게 해주겠다.

누구라도 나의 열쇠를 찾는 자에게 발렌시아 왕가의 이름으로 큰 보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 발렌시아 서부 지역에 내리는 바르한 왕자의 공문

 

제3장 의심, 바심족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심족이 의심받을 일은 없었다. 그들은 '명예로운 삶'만이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고 믿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누군가는 부를 위해서 살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산다.

바심족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명예이다. 명예는 그들에게 삶의 목적이자, 삶의 이유와도 같다. 명예롭지 못한 것은 더럽고 추악한 것이고, 삶의 모든 순간이 명예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그것 역시 더럽고 추악하며 별 볼일 없는 삶이었다.

전투는 항상 양측에 공표되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상대방의 전부와 자신들의 전부를 부딪쳐 승패를 가르는 것이어야 했다. 암살, 독살, 함정과 같은 비겁한 수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혐오스러운 것이며 바심족 누구라도 이러한 수를 썼다면 큰 처벌을 면치 못하였다.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동족들의 멸시와 비난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바심족이 비겁하게, 그것도 암암리에 다른 종족을 습격한다는 것은 절대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이건 마치 폭포가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른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바심족의 습격에 따른 피해가 이어지고 있었다.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바심족이 습격이라니! 단체로 미치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누군가 바심족처럼 분장을 하고 도적질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습격의 현장에서는 항상 바심족의 갈기와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모든 증거가 바심족을 가리키고 있었다. 검고 긴 갈기, 검은 것은 처음 본 것 같지만, 바심족의 것이 확실했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는 것인가?

 

제4장 힘에 대한 갈망

명예란 것은 생사를 오가는 전장의 비명을 가리는 나팔소리로, 적의 칼날에 쓰러져간 수많은 희생자를 욕보이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적에게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이 적에게 유린당한다는 것이다. 전쟁에 승리한다고 해도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찍어누르지 못한다면, 내 전우와 가족들의 피가 스며든 고지에 승리의 깃발을 꽂게 되는 것이다. 이런 승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족장이 되었다는 자는 고작 명예를 다하는 삶이야말로 바심족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 떠들어대며 젊은이들을 현혹하고 있는 꼴이라니! 만약 내가 감옥 안에서 먹은 음식이 있었다면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힘, 압도적인 힘의 차이야말로 우리 가족과 벗들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자 전쟁의 칼날 속에 쓰러져 갈 젊은이들을 구원할 수 있다. 적들이 감히 덤비지 못할 힘을 갖는 것이 싸우지 않고도 적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토레난두, 너는 틀렸다. 족장이 될 자격이 없다. 네놈이 그렇게 바라는 명예로는 우리 바심족을 지킬 수 없다. 내가 지킬 것이다.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내 자신이라 할지라도!

- 바심족 주둔지 제단에 갇힌 카팀부루의 독백

 

제5장 발렌시아의 두 번째 왕자

"큰 형님이 왕가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어머니?"

바르한은 처음에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큰 형님인 사하자드 네세르가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에 무슨 열쇠를 말하는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왕가의 열쇠'임을 떠올리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 년의 역사 동안 전해져 온 발렌시아 왕가의 열쇠는 발렌시아 1대 국왕이 탄생한 장소로 향하는 열쇠였다. 대대로 발렌시아 국왕만이 지닐 수 있는, 왕이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즉 그것이 없다면 진정한 왕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물건.

진정한 왕의 증표.

"하지만, 어떻게 열쇠 없이 형님이 왕위에 오른 것입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선대 국왕 토르메 네세르의 세 번째 부인, 바르한의 어머니는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사하자드는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고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만 말하였다.

큰일이었다. 대 발렌시아 왕국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이 사실은 그 누구도 알게 해선 안 된다. 만약 바깥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네세르 왕가의 통치가 끝나고 나라가 전복될 수도 있다. 바르한은 초조해졌다. 하지만 순간 바르한의 뇌리에 스친 단 하나의 명제가 그의 초초함을 멈추어 주었다.

"형님이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버님도 왕가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바르한은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고자 했다. 발렌시아 왕가에 관련된 모든 서적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왕가의 열쇠는 1대 국왕에 관한 자료에서 여러번 등장하는데 그 이후로는 언급이 없었다. 아니, 마치 어떻게든 언급을 피하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부터 그가 오랫동안 묻어왔었던, 그리고 왕위 계승 서열 2위이기에 품기를 포기했었던 불꽃이 바르한을 휘감기 시작했다.

 

제6장 켄타우로스의 영물

"흐아아암!"

오늘도 나른하고 좋은 하루다. 몸은 가볍게 가라앉고 눈꺼풀이 부드럽게 감기는 것이 단잠을 잘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 오늘도 늘어지게 잘 수 있겠지.

"진즉에 이렇게 할걸!"

며칠 전 자니야는 아알 순례자의 성소를 방문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만사 귀찮은 까닭에 타프타르 언덕 즈음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켄타우로스들 속에서 녹아들어 온종일 잠만 자고 있었다. 켄타우로스들은 엄청나게 위험하지만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의 잠을 지킬 이만한 파수꾼들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소가 별것 있나! 어디에서든 아알 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하면 그곳이 바로 성소가 아니겠는가?

자니야는 또다시 자기합리화를 하며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낮잠은 풀벌레들이 밤의 노래를 부를 즈음에 끝이 났다. 몽롱한 상태에서 눈을 뜬 자니야는 저 멀리 어떤 사람이 켄타우로스들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왔지만 두 발로 걸어가는 생명체를 본 건 오랜만이었다. 다시 잠든 자니야는 소란스러운 발굽 소리에 잠을 다시 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했다.

켄타우로스들이 엄청나게 흥분한 채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구석에 숨어있었던 자니야는 소란이 잠잠해지자 주변을 살펴보았다. 켄타우로스들이 모두 어디론가 간 듯했다. 문득 어제 정체불명의 사람이 동굴로 들어간 일이 기억난 그는 바로 켄타우로스들이 떠받드는, 영물이 있는 굴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 녀석들이 이게 아니면 그렇게 화날 일이 없지. 항상 밝게 타오르며 켄타우로스들을 보호한다는 영물의 불꽃이 꺼져있었다. 순간 자니야는 잠자리를 옮겨야 하나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돌아온 켄타우로스들이 바심족 어쩌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심족? 그게 바심족이었나?"

뭐든 상관없었다. 자리를 옮길 필요 없이 여기서 계속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곤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드는 자니야였다.

 

제7장 암석 지대로 향하는 탐구심

"어째서 그런 것일까?"

지성의 발전은 언제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관점은 현상의 이면을 통찰하게 하며 나아가 근원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즉, 물음표에 마침표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물음표에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더 깊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인간은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학문의 시작이다.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멈춰있는 것이고, 모든 사물은 변해가고 나아가는데 여기에 멈춰있다는 것은 퇴보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쩌면 질문을 던질 것이 없어지는 지점이 바로 인간 지성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며 인간이라는 종의 종말이 아닐까?

발렌시아에 사는 시라즈는 그러므로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탐구하고 질문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여한, 인간 전체를 위한 책무는 시라즈에게는 전혀 버거운 짐이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실제로 세상에는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기원을 다룬 전설과 고대인들의 삶의 흔적, 의문의 종말을 맞이한 고대 문명이나 흉흉한 소문들은 시라즈의 탐구심을 격렬하게 자극했으며, 그런 그녀는 이를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었다.

바르한 왕자의 열쇠에 대한 소문이 점점 식어갈 무렵, 그녀의 호기심이 방향을 잃어가려 하고 있었다. 시라즈는 조금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으... 따분해. 좀 새로운 게 없을까?"

답답한 마음에 환기도 시킬 겸 그녀는 저잣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한 카탄군 무리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군인들의 이야기에 그녀의 호기심은 다시 방향 감각을 찾을 수 있었다.

"고르고 협곡에서 마필이 석화된 사건이 발생했네. 아무래도 바실리스크의 소행 같은데 진상 조사 차원에서 바롬을 파견했다는구먼."

시라즈는 그길로 바로 도서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바실리스크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고르고 암석지대에 대한 무서운 전설, 바라만 봐도 돌이 되는 석화의 저주, 그리고 그 저주를 아랑곳하지 않고 바실리스크를 소탕한 후 유유히 빠져나온 한 모험가.

"왜 이걸 이제서야 듣게 되었을까!"

마치 인생을 낭비했다는 표정으로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으며 그녀는 바로 집으로 달려와 간단하게 짐을 챙긴 다음 시장에서 낙타 한 마리를 빌렸다. 한동안 잔잔했던 마음에 파란이 일자, 그 떨림과 설렘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활기를 되찾은 그녀의 눈동자는 쏟아지는 별보다도 밝게 빛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빛은 고요한 사막의 밤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제8장 하르난 상단의 최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라힘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상단 행수의 얼굴을 기억한다. 참으로 간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이미 대형 상단이라 불리던 하르난 상단이었지만, 최근 들어 다른 상단과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며 초조해하던 그가 이리도 즐거워하는 모습이라니, 덩달아 들뜬 라힘은 행수와 밤새 잔을 기울였다.

소박한 잔치는 달이 저물 때까지도 계속됐다. 라힘은 분위기의 흐름을 타 그 대단한 의뢰인이 누구인지, 무얼 가져다 달라고 했는지 슬쩍 물음을 건넸다. 하지만 행수는 대답해줄 듯하다가도 입을 다물었다. 이에 라힘은 그의 입을 열기 위해서 잔을 더 건넸다. 결국 행수는 술에 취해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귀띔을 해 주었다. 와중에도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였다. 그리고 행수는 품에서 의뢰서로 보이는 서한을 라힘에게 주었다.

의뢰서를 받아든 라힘은 너무도 놀라서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의뢰인은 바르한 네세르 왕자였다. 그리고 행수의 그토록 숨길 수 없었던 미소가 이해되었다. 그런데 순간, 라힘에게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문장은 심상치 않은 위화감을 머금고 있었다.

'왕실에 보고하지 말고 바르한 왕자님께 납품할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 위화감을 그냥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라힘은 취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행수의 마음에 동화된 것인지 모르나 앞으로의 하르난 상단이 얻게 될 신뢰와 명성을 상상하며 그 위화감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바르한 왕자를 통해서 왕실과의 직접적인 연결이 생긴다면 다른 상단과의 경쟁을 넘어선 절대적 지위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이 되자마자 라힘은 가장 튼튼한 말과 발이 빠른 낙타, 그리고 경험이 풍부한 상단원만 뽑아 행렬을 꾸렸다. 맡은 의뢰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리 단단히 준비해도 부족한 듯했다. 곧 하르난 상단의 행렬은 수도 발렌시아를 떠났다. 사막을 건너고 발렌시아의 국경을 지나 메디아의 한적한 대장간까지 가는 무역 길은 순탄하고도 순탄하기만 했다. 그리고 도착해서 바로 행수는 대장간에 물건 제작을 의뢰했다. 그때 행수를 보필하던 라힘은 왕자에게 전달해야 할 물건이 황금 열쇠인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자물쇠도 없는 보통의 열쇠를 왜 만들어서 보내 달라고 했던 것일까?

열쇠 제작이 완성되고 발렌시아로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상단의 인원을

점검하고 실을 짐들을 확인한 후 라힘은 행수에게 보고하러 행수가 머무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행수는 어떤 서신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서신을 읽는 행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러는지 물어보았지만, 행수는 별 거 아니라는 말과 함께 내일 떠날 채비는 다 되었는지 물었다. 라힘은 준비는 끝났다고 대답하며 자신 역시 잠을 청하러 갔다.

다음날, 무언가가 하르난 상단을 덮친 건 바윗돌 초소를 막 지났을 때였다.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소동 속에서 정신을 차리니 눈이 붉은색으로 사악하게 빛나는 검은 바심들이 행렬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르난 상단을 바실리스크 제단 한가운데로 끌고 갔다. 바실리스크? 우리를 왜? 라힘은 바심족이 왜 우리를 바실리스크에게 데리고 왔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바심족은 바실리스크를 혐오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바실리스크는 소리치는 라힘을 비웃으며 행수를 비롯한 상단의 모든 사람들에게 석화의 저주를 걸었다.

악독한 바실리크들은 행수에게 유독 강한 석화 저주를 걸었다. 마침내 행수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굳었을 때, 그는 메디아에서 받았던 서신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발렌시아 국왕 사하자드의 동생, 만메한 네세르 왕자의 것으로 바르한 네세르를 믿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바르한 왕자의 계획에 동참한 것이며 그리고 그 계획은 일개 상단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고 했다.

행수는 후회와 한탄만을 내뱉었다. 결국 우리는 이용만 당하다 이 꼴이 된 것이라고. 바르한 네세르의 제안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누가 확언할 수나 있는 일이던가? 만약 그때 바르한 네세르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지금보다 더 빠른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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